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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들의 이름
김인배, 김문배 | 도서출판오늘 | 2010-07-26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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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들의 이름
김인배, 김문배 | 도서출판오늘 | 2010-07-26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신들의 나라! 일본의 고대 역사서에 신으로 등재된 천황들의 휘(諱)와 시호(諡號)를 한국어 식으로 명쾌하게 풀이함으로써 일본열도를 긴장시킬 역작 국내 우선 출간!
-신라 「향가(鄕歌)」, 일본 「와카(和歌)」와 「만요슈(萬葉集)」 연구의 독특한 해법제시로 양국 고대사학계를 놀라게 한 형제 역사학자가 쓴 화제의 신간! 일본인들의 의식구조 속에는 자신의 나라가 ‘신들의 나라’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고, 천황의 존재는 그 숱한 신들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다. 천황은 신이기 때문에 성이 없고 이름뿐이다. 우리가 일본 고대사 연구에 깊이 천착하면서 특별히 주목한 것은 신으로 추앙되던 고대 일본천황들의 중국식 시호(두 글자로 된 짧은 명칭) 옆에 또 다른 긴 이름이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한자(漢字)로 표기했지만 정격(正格)한문이 아니어서 그동안 일본학계는 그 뜻을 전혀 해독하지 못했다. 그냥 나열된 한자를 일본식 음ㆍ훈독(音ㆍ訓讀)으로 호칭할 뿐 뜻은 잘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자차용(漢字借用)으로 기록된 제법 긴 수수께끼 같은 이 별칭들은 이른바 신라의 향찰식 표기처럼 음독과 훈독의 조합을 통한 ‘소리 매김 부호’로서 고대 한국어로 읽힌다는 중요한 발견을 통하여 이 책이 쓰였다. 이 책은 부제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일본 천황들의 이름을 연구하여 그 이름이 지어지게 된 내력과 그 이름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밝힌 연구서이다. 이 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일본인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천황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는가? 일본은 가히 '신(神)들의 나라'로 불릴 만하다. 일본열도의 곳곳에 신들을 모신 각종 신궁(神宮) 및 신사(神社)에 대한 참배행위도 일상화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온갖 신들 가운데서도 으뜸은 역시 천황이었다. 소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미국에 패망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선언을 한 일본국왕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현신인(現神人)으로 추앙받았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신의 나라 백성이라는 일본인의 특이한 의식구조에서 연유한다. 대관절 그와 같은 사고방식의 연원(淵源)은 어디서부터인가? 그것은 일본인들이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국민문학'으로까지 인식하는 「고사기(古事記)」 및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관찬정사(官撰正史)인 이들 두 고서(古書)에는 고대 일본의 신화, 일본민족의 탄생과 유래, 그리고 국가형성 등의 모든 것이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고사기(古事記)」에는 제1대 신무(神武)부터 추고(推古)까지 33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제1대 神武부터 제40대 지통(持統)까지 40인의 천황들의 시호(諡號)와 휘(諱)가 나온다. ‘시호’ 또는 ‘휘’라는 것은 왕이나 기타 지체 높은 분의 사후에 그들의 공덕을 기려 생전의 업적이나 특징 따위를 함축하여 붙였던 이름이다. 천황의 이름이 향찰식의 표기로 붙여지게 된 배경과 내력은 무엇인가? 요컨대 한자를 차용(借用)하여 기록한 그 수수께끼 같은 천황의 별칭들을 명쾌하게 해독한 연구서가 이번에 출간되었다. 『神들의 이름』(부제-일본 천황가의 한국식 이름 연구)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일본어의 음과 훈을 빌려 적었으리라 여겨왔고, 또 그렇게 읽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그 일본천황들의 휘(諱)를 고대 한어(韓語)로 해독했을 때 비로소 그 이름들이 지닌 수수께끼 같은 비밀이 확연히 풀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로써 이 연구서는 일종의 「어문역사연구(語文歷史硏究)」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학술적 의의를 지니는 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일찍이 일본에 문자, 즉 한문을 전래한 것은 백제인들이었다. 그 사실은 「수서(隋書)」 권81의 「동이전 왜국」 조(條)에 기록되어 있다. 또 「일본서기」에서도 응신(應神)천황 때 태자(太子)의 스승이 된 백제인 아직기(阿直岐)는 다시 왕인(王仁)박사를 천거하였고, 그는 한문의 전적(典籍)들을 본격적으로 전래하여 태자를 가르쳤다. 훗날 왕인 박사는 이른바 서수(書首:후미노 오비토)의 시조가 되었던 사람이다. 게다가 백제의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 유민인 태안만려(太安万侶:오노 야스마로)는 천무(天武)천황의 명을 받아 사서(史書)편찬의 일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후일 원명(元明)천황의 재조(再詔)를 받고 마침내 서기 712년 「고사기(古事記)」 3권을 완성하게 되었다. 특히 천무천황 재위 중에 편찬이 시작되었을 「고사기」 외에, 훗날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원본이 된 「일본기(日本紀)」의 성립연대를 학계에서는 서기 72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무튼 이 두 사서를 근간으로 하여 보완된 「일본서기(日本書紀)」 역시 이른바 백제삼서(百濟三書: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를 많이 인용하고 참고해서 완성된다. 이런 점에서 이들 천황의 긴 이름들이 당시 한어(韓語)의 음과 훈을 빌려 적는 소위 향찰식 표기였던 것으로 볼 개연성은 충분하다. 말하자면 한자를 최초로 일본에 가져와서 사용한 집단은 주지하다시피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자기 나랏말을 적는 방식에 고심했다는 것은 결국 본국이었던 고대 한국에서 행했던 방식과 유사했을 것이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향가(鄕歌)는 8세기 이후 신라인이 향언(鄕言), 즉 신라 말을 적기 위해 소위 향찰(鄕札)을 이용한 표기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6세기에 백제인들도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는 향찰식 표기법을 사용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지난 1971년 발견된 백제 무령왕릉의 지석(誌石)이 한국식 어순(語順)과 한문이 혼재돼 있는 점, 또 2000년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의 인근에서 발견된 목간(木簡)의 내용, 다시 2002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한 목간(6세기 유물) 등을 통해 이미 서기 6~7세기 초에 백제인이 향찰로 쓴 가장 오래된 글귀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신라의 경우, 현존하는 25수의 향가에 국한시켜 말하더라도 「서동요(薯童謠)」라고 통칭되는 향가는 신라 진평왕 시대(579~632년)에 지은 것으로 돼있다. 따라서 그 창작시기의 상한점은 6세기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은 일본에서 만엽가(万葉歌)가 처음 창작되던 시기와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향찰식 표기법의 기원은 8세기의 신라학자인 설총(薛聰)이 이두(吏讀)를 발명했다는 692년보다 훨씬 앞서 나타나고, 「남산신성비(南山神聖碑)」나 「갈항사조탑기(葛項寺造塔記)」의 조성연대인 7세기는 물론이고, 간단한 인명, 관명, 지명 등에서는 한자차용에 의해 우리말을 표기한 방식이 고대 3국에서 기원 1세기 무렵에 벌써 사용되었던 예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인명(人名) 등을 향찰식으로 적고 읽는 방식은, 일본으로 건너간 한지(韓地)의 도래인들에 의해 그대로 전해져, 거기서 더욱 발전하였다. 바로 이 책은 일본의 역대천황(歷代天皇)들의 시호 및 휘를 고대 한어(韓語)로 해독한 연구서이다. 그리고 여러모로 고정관념의 기존 틀을 깨는 참신한 발상과 독창적인 연구방법으로 논지를 펼치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8세기에 이미 「일본서기」편자들의 가필(加筆)과 변개(變改)와 조작(造作)까지 이뤄진 사례들을 이 연구서는 '탐색'과 '쟁점'을 통해 다루고 있어서 날조된 역사는 언젠가 반드시 그 진상을 드러내기 마련임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식 이름을 가진 일본 천황가의 정체를 밝힘과 더불어, 이 연구서가 시사(示唆)하는 바에 따라 가장 괄목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변조하면 훗날 반드시 역사의 보복을 당하게 된다는 교훈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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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이 내린 땅 인간이 만든 나라 브라질
김건화 | 미래의창 | 2011-01-25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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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이 내린 땅 인간이 만든 나라 브라질
김건화 | 미래의창 | 2011-01-25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하루 만에 읽는 브라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축구와 카니발의 나라, 신흥경제국인 브릭스의 한 나라로 알려진 브라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브라질에는 원시시대에 머물러 있는 아마존 원주민들과 유럽이나 북미의 선진국에 버금가는 부유층들이 공존하고, 항공우주산업의 선진국임에도 60년대식 자동차가 아직까지 생산되고 도로를 활보하고 다니고 있다. 이 책은 현직 외교관이자 전 주브라질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저자가 브라질의 탄생배경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정작 우리가 모르고 있던 브라질의 색다른 모습을 다루고 있다. 축구와 삼바에 가려졌던 진짜 브라질을 만난다! 월드컵 5회 우승에 빛나는 축구의 왕국, 매년 2월 말이면 삼바리듬에 몸을 맡긴 카니발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나라, 그리고 지상 최대 생물의 보고이자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이 숨쉬고 있는 나라. 바로 남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라질 하면 이 정도의 설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바스콘셀로스와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를 배출하고 노동자 출신의 룰라 대통령이 집권하는 남미의 한 나라로 각인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신흥경제국의 한 국가로서 각종 뉴스와 경제전망에 단골로 등장하고 있고,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는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브라질에 대해 알려진 대부분의 정보들이 경제상황을 다루고 있거나 단편적이어서 브라질이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이르는 전반적인 정보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브라질 하면 으레 축구와 삼바 정도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 남미를 발견하는 데 큰 원인이 되었던 유럽의 식민지 경쟁에서부터 브라질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나폴레옹과 포르투갈의 관계, 왜 브라질이 스페인 언어를 쓰는 다른 남미국가와는 달리 포르투갈 언어를 쓰고 있는지, 오늘날의 브라질 영토가 갖춰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 외에 그 이면에 숨은 배경지식들을 설명하고 있다. 또 재미있게도 브라질 사람들은 라이트 형제보다 3년 늦게 비행기를 띄웠지만 자국 출신인 알베르뚜 상뚜스 뒤몽을 세계 최초의 비행기 제작자로 인정한다. 그 덕분인지 브라질의 항공우주산업은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다. 에너지산업 분야에서도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바이오에너지의 개발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을 만큼 앞서 있다. 게다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신은 브라질 사람인 것 같다”라고 말한 것처럼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자원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 중 하나이다. 세계 5위의 광활한 영토와 전 세계 경작 가능 토지 중 22퍼센트를 확보하고 있고, 남미 2위의 석유 매장 국가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처럼 브라질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그동안 축구와 카니발에 가려져 볼 수 없었던 진짜 브라질을 보게 될 것이다. ‘아마존의 눈물’은 곧 브라질의 역사다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리스 카브랄이 최초로 브라질에 도달했을 당시, 브라질의 원주민들은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문명발생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정착생활이 필요치 않았다. 게다가 브라질의 원주민들은 1,400여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이주민들이 진출하여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도시화하고 아마존을 무분별하게 개발하자 그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M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다룬 오늘날의 아마존이 겪고 있는 개발의 바람, 환경파괴 등의 위기는 500여 년 전 외부세력이 브라질에 발을 내딛으면서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브라질의 발견 이후, 유럽에서 진출한 이주민들 외에도 사탕수수와 금광의 개발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노예들도 브라질에 등장한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은 미국의 노예들과는 달리 높은 강도의 노동으로 인해 현지 출생률과 평균 수명이 낮았다. 때문에 브라질로 유입되는 노예의 수가 미국에 비해 일곱 배에 달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과 함께 자연스레 그들의 토속신앙이 들어왔고 이는 유럽의 기독교문화에 바탕을 둔 카니발과 합쳐져 오늘날의 삼바문화를 만들었다.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고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삼바는 아프리카 노예들의 슬픔이 담긴 역사가 담겨 있다. 이러한 정보들은 브라질의 발전가능성이나 경제적 가치 같은 수치만으로는 알 수 없다. 만약 브라질로 진출하려는 기업이나 여행을 계획하는 일반인이라면 브라질의 역사, 문화, 사회 등을 알아야 진정한 파트너,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브라질의 숨은 역사, 진정한 매력을 만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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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의 뒷담화
박철규 | 애플북스 | 2011-02-22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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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의 뒷담화
박철규 | 애플북스 | 2011-02-22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사색하다
저자는 외신 기자 생활을 하면서 세계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들을 것, 못 들을 것 그리고 볼 것, 못 볼 것 다 듣고 보았다. 그 내용은 저자의 표현처럼 “내 수준에 맞아 형편없이 수준이 낮다.” 하지만 점잖고 학식 많은 사람들도 논어, 맹자, 주역 따위의 골치 아프고 어려운 책들만 읽지는 않는다. 읽기가 부담스러우니 우스개의 골계소설이나 남녀가 얼려 농탕질을 진하게 치는 <<금병매>> 따위를 남 몰래 읽고는 즐거워하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이 듣고 본 것들의 내용이 골계소설 수준일 것이지만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옛날 책 속의 것들과 짝을 맞추어보았다. 역사 속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옛책을 통해 들려주는 이 책은 골계소설이나 <<금병매>>를 읽는 듯한 재미는 물론이고 역사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한다. 초미니스커트와 핫팬츠 1550년경 스위스 제네바에서 참으로 묘한 일이 있었다. 엉뚱하게도 ‘칼뱅’이라는 개 이름이 대유행했던 것이다. 그 이름이 얼마나 유행했는지 공원이나 거리에서 ‘칼뱅!’ 하고 고함을 지르면 온 도시 개들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줄 알고 모여들었다. 어쩌다가 그런 괴상한 일이 벌어졌을까? 역사시간에 종교개혁을 배울 때 마르틴 루터와 칼뱅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것이다. 그 종교개혁가 칼뱅이 자유분방하던 제네바에 느닷없이 부임하고는 호랑이를 잡기 시작했다. 너무나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갖다 대며 말이다. 시민들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유럽이 기독교 물에 잔뜩 배어 있던 당시 였으니 그런 칼뱅한테 시민들은 찍 소리 한 번 못하고 곱게 당했다. 칼뱅은 교회헌장이란 듣도 보도 못한 규율을 만들어서 시민들을 달달 볶았는데 특히 젊은 여성들이 죽을 지경이었다. 규율은 젊은 여성들에게 더욱 엄격했다. 교회에 예배를 보러 오는 여자들의 치마 길이를 재고는 다리의 생살이 허옇게 드러난 곳에 회초리를 갖고 난장질을 했다. 제네바는 호수로 유명한 곳으로 겨울이면 온 시민이 호수로 나와 스케이트를 탔다. 스케이트는 제네바 시민들의 인기 스포츠였다. 칼뱅은 스케이트를 타는 젊은 여성들을 노렸다. 정숙해야 할 처녀들이 다리를 있는 대로 쩍쩍 벌리거나 내뻗으면서 스케이트를 타면 되겠냐고 말이다. 물론 잡아다가 종아리에 곤장질을 했음은 물론이다. 칼뱅은 마침내 제네바의 젊은 여성들에게 공포와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처녀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고 복수에 나섰다. 그 방법은 바로 칼뱅에게 모욕을 주는 것! 그들은 키우던 개의 이름을 모두 ‘칼뱅’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칼뱅은 개새끼’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런 칼뱅이 살아서 오늘날 우리나라에 관광을 온다면 어떨까? 거리의 젊은 여성들을 보고는 아마 기절초풍해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을 것이다. 초미니스커트와 핫팬츠의 물결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이 허연 다리를 다 드러내놓고 보무도 당당하게 거리를 휩쓸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진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찬바람 부는 한겨울에도 그렇게 입는 이유가 뭘까? ‘내 허연 다리를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남성들을 낚아보자’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침을 흘리기는커녕 ‘날씨도 추운데 꼴에 유행 따른답시고’라며 비아냥거리는 남성이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패션 때문에? 남들보다 튀어 보이려고? 경제용어 중 희소가치라는 게 있다. 모든 여성이 초미니스커트와 핫팬츠를 입는다면 긴 치마, 긴 바지를 입는 게 더 패셔너블하고 튀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섹시해 보이려고? 여성들이 긴 치마만 입고 다니던 옛날 어쩌다 치마가 바람에 나부껴 여성의 허연 종아리를 본 남성은 적어도 3일 동안 아랫도리가 후들거리고 후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바로 이것이 섹스어필 만점이라는 거다. 김용숙 교수의 《한국 여속사》를 보면 더벅머리 총각이 이웃 처녀의 종아리를 좁쌀만큼만 보아도 한이 없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 인도의 신비주의자인 오쇼 라즈니쉬는 나체주의자의 정신을 치료할 때 환자가 옷을 홀랑 벗더라도 절대 관심이나 호기심을 보이지 말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환자는 자기가 옷을 벗었는데도 모두가 본체만체하자 당혹스러웠다. 이렇듯 여성 모두가 드러내놓고 다니면 남성은 있던 관심도 사라지고 만다. 그럼 섹시해 보이려는 대상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만족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유행에 처지지 않으려고? 꼭 봐야 쓰것소 매춘과 세금은 역사적으로 참 오래도 되었다.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회라는 것을 이루고 살기 시작한 그때 이미 이 둘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함께 생겨났다.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다. 매춘 이야기는 아무래도 점잖지 못하니 여기서는 세금 이야기만 하도록 하자. 서쪽 바빌로니아에는 ‘함무라비 법전’보다도 300년이나 앞선 ‘리피트 이슈타르’라는 법전이 있었다. 단군 할아버지가 백두산 꼭대기에 우리의 첫 나라인 고조선을 세우던 무렵이니 4,000년도 넘었다. 이 법전은 흙으로 구운 점토판에 쓰여 있어 모진 풍상을 오래도록 겪고도 오늘날까지 멀쩡하게 남아 있다. 거기에도 세금 조항이 나와 있다. 동쪽의 중국 하나라에서도 세금을 착실하게 거두어들였다는 갑골문자 기록이 있다. 세금은 참으로 확실하고도 끈질기고 또 치사하다. 점잖던 돈키호테는 이 세상에서 죽음만큼이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바로 세금이라고 했다. 묘까지 따라가는 것이 세금이라는 영국 속담이 있듯이 끈질기다. 리피트 법전은 아득한 그 시절 세금 떼일 것을 걱정해 조세체납조항까지 두어 빠져나갈 구멍을 완전히 없앴다. 치사하게도 처녀, 총각이 장가가고 시집가는 데까지 손을 내밀어 혼인세를 받았다! 국민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조세정체에 대한 거센 항의와 반정부 데모가 일었다. 결국 그 정권은 무너지고 유명한 함무라비 대왕이 권력을 잡았는데 그는 개혁법을 마련해 당장 혼인세부터 없앴다. 세금의 야만성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아니 세월이 흐를수록 더하다. 계몽시대의 러시아 계몽군주였던 표트르 대제는 역사상 처음으로 수염세라는 세목을 만들었다. 그것도 세수 증대를 위해 콧수염세와 턱수염세를 나누어 받아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역시 선진국이었다. 표트르의 수염세보다 더 야만스러운 백골세를 받았기 때문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조선 말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나오는 글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조선 말 충청도 어느 물가에 강씨 성을 가진 과부가 홀로 살고 있었다. 살림도 넉넉한 데다 빼어난 미인이었다. 건달들의 유혹 대상 0 순위였지만 그 유혹을 싹 거절한 과부는 말벗 삼아 기르는 개 한 마리를 무척 아꼈는데 그 놈에게 복이 있으라고 이름을 ‘복구’라고 지어주었다. 밥을 줄 때나 그 놈을 부를 일이 있으면 ‘복구야!’라고 큰 소리로 불렀다. 어느 벼슬아치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남자라고는 없는 집에서 남자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의심이 부쩍 났다. ‘복구란 놈이 잘도 숨어 지냈구먼. 어림 반 푼도 없지.’ 그 벼슬아치는 어느 날 과부 집에 들이닥쳐 복구란 놈의 인두세를 그동안 밀린 것까지 몽땅 내놓으라고 과부를 닦달했다. 기가 찬 과부가 “나리는 우리 복구를 꼭 봐야 쓰것소?”라며 큰 소리로 복구를 부르자 복구란 놈이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집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개한테도 세금을 매겼을까? 그랬다면 ‘개세’가 되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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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책 밖으로 나온 바람난 세계사
박철규 | 팬덤북스 | 2011-01-31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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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책 밖으로 나온 바람난 세계사
박철규 | 팬덤북스 | 2011-01-31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역사에는 역사가의 상상력이 가미된다?
역사학자 E.H 카는《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 상호작용의 연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했다. 카는 ‘역사인식은 역사가가 현재적 인식 관심에 따라 과거와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시작되며, 그 대화의 결과로 성립하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에는 역사가의 상상력이 가미된다’고 강조했다. 카에 따르면, 결국 역사적 지식의 객관성은 사실적인 객관성이 아니라, 관계의 객관성 곧 사실과 해석, 과거와 현재 및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역사가의 관점과 주관성이 결부될 수밖에 없으며, 승자에 의한 기록일 수밖에 없다. 패자는 기록할 시간도 능력도 없을뿐더러, 기록하기 전에 이미 승장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록된 역사를 정사(正史)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만들어진 역사를 배우고 익히고 있는 셈이다. 이 책《책 밖으로 나온 바람난 세계사》의 저자는 올해 일흔세 살이 되는 역사만담꾼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역사철학을 수학했으며 프랑크푸르트와 빈 등 유럽에서 해외 특파원으로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러면서 그에게 화두가 생겼다. 바로 역사였다. 영어, 프랑스,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를 능통하게 읽을 수 있는 저자가 섭렵한 역사책들은 너무나 다양했으며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가득했다. 대부분의 이 책들은 아직도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그는 역사를 서양사와 동양사를 분리해서 보지 않으며 동서양의 역사적 사건의 연관성을 파헤쳐 보는 일에 몰두해 왔다. 서양사를 모르고 동양사를 논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또한 세계의 역사적 사건들에서 드러나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 인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의 나비효과다. 신화 같은 역사, 전설 같은 역사, 구라 같은 역사 ‘별빛에 물들어 아롱거리고 있는 것이 신화요. 달빛에 젖어서 시들어져 있는 것이 전설이며, 햇빛에 그을린 채 남아 있는 것이 역사다. 신화는 머릿속에만 있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실체가 없다. 전설은 시간의 무게에 못 견뎌 시간과 공간에서 모습을 갖추었다. 원래 실체는 있었다. 역사는 공간과 시간 속에 그 모습을 지금 드러내고 있다. 바로 실체를 만질 수가 있다.’ 저자는 “역사는 실체를 만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만큼 역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과정으로 존재했으며 지금도 그 과정은 진행 중이다. 그래서 신화가 역사가 되기고 하고, 전설이 역사가 되기도 하고, 구라가 역사가 되기도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역사는 역사가가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새롭게 탄생한다. 이 책은 동서양의 역사에 해박한, 그것도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는 책들에 박식한 저자의, 동서양의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色다른 눈으로 통찰하는 유쾌한 세계사 엿보기다. 총 58편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에는, 신대륙을 발견한 마르코 폴로가 포로수용소에 갇힌 이유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기, 충신을 군주가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 공화국과 내각제의 기원, 원수가 아닌 신주단지 모셨던 뱀 이야기, 도둑과 창녀 들의 윤리 강령 백서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기상천외한 역사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는 세계사의 별스런 사건들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한다. “인간의 온갖 잡동사니 이야기들이 역사 속에 수북하게 끼여 있다. 역사 속의 황당한 이야기들이라도 현재의 우리 삶에서 거울이 됨 직한 것들도 많다. 신화나 전설이 아닌, 역사 속에서 황당하고 텁텁한 이야기들만을 골라 오늘날 우리의 삶, 고상하게 말해 실존을 비추어 보고자 했다. 아울러 재미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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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허난, 우리는 요괴가 아니다
서명수 | 김앤정 | 2010-12-03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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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허난, 우리는 요괴가 아니다
서명수 | 김앤정 | 2010-12-03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사회주의 중국에도 지역차별이 존재한다
중국에는 ‘허난런’이라는 말이 있다. 허난에 사는 주민이나 허난이 고향인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말에는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음흉하고 나쁜 허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허난런이라는 말은 허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주홍 글씨’다. 허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무시와 차별로 공공연하게 표출된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직원 모집 공고에 허난 출신은 뽑지 않는다는 조건이 달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국가 기관의 공채에서도 허난 출신은 불이익을 당한다. 규모가 작은 식당이나 상점 등에서도 허난 출신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허난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하고 소박하고 착하다. 수천 년 전부터 중국을 지배해온 ‘중국인 중의 중국인’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중화민족의 원류(原流)가 바로 허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허난 사람들은 모든 중국인들로부터 차별을 당하는 것일까? 천하의 중심 허난은 과연 중국의 ‘소외된 변방’인가? 허난(河南)은 중원(中原)이다 허난(河南)은 허베이(河北)와 안후이(安徽),산둥(山東), 산시(山西)와 산시(陝西), 후베이(湖北) 등 6개 성(省)에 둘러싸인 중국 대륙의 중심이다. 황하 문명의 젖줄인 황허(黃河)가 허난의 북쪽을 가로지르면서 허베이와 경계를 이룬다. 중국 전도(全圖)를 펼치면 허난은 신장(新疆)과 시장(西藏),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와 칭하이(靑海)를 제외한 중국 대륙의 중심에 있다. 천하의 중심인 그곳이 중원이었다. 허난은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천하쟁패의 무대였다. 허난이 중국 정부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된 것은 2004년 ‘중부굴기(中部屈起)’ 이후부터였다. 중국 정부는 연해 지방과 내륙 지방 간의 빈부격차를 해소하겠다며 서부 대개발 프로젝트와 동북 개발 정책을 채택한 데 이어 중부굴기 프로젝트까지 추진하고 있다. 중부굴기는 허난과 산시(山西), 안후이, 장시(江西), 후베이, 후난(湖南) 등 그 동안 경제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중부 6개 성에 대한 집중 개발로 지역 간 경제력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야심만만한 정책이다. 수천 년간 천하의 중심이었던 ‘옛 중원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떨치라’는 것이다. 허난, 중국을 이해하는 키워드 허난에 가면 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만날 수 있다. 허난에는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대도시와는 다른 중국의 참모습 있다.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중국이 아니라 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중국의 원형(原型)이 있다. 이 책은 허난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리포트다. 그러나 허난 이야기는 중국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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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황궁의 성
시앙쓰 | 미다스북스 | 2010-03-17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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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황궁의 성
시앙쓰 | 미다스북스 | 2010-03-17 | 공급 :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11-01) 대출:0, 예약:0, 보유수량:3 지원기기:
최고 권력의 상징, 구중궁궐을 파헤치는 가장 생생하고 적나라한 기록!!
봉건 절대군주 통치시대 황궁에서 빚어지는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 애인을 아들 진시황에게 찢겨죽은 조태후, 아들의 아내를 취한 당고종 중국의 제왕들은 자손 번성을 구실 삼아 성적 쾌락을 즐기며 여색에 빠져 지냈다. 어린 황제와 태자는 사춘기 전에 성교육을 받았고, 유모나 궁녀를 임신시키기도 했다. 이것은 황제에 그치지 않았다. 통일된 중국의 첫황제인 진시황제의 어머니 조태후는 성적 욕구를 억누르지 못해 가짜 환관 노애와 정을 통해 아이까지 낳았으며, 조태후의 정부 노애는 후에 진시황에게 찢겨죽는다. 딸도 아들도, 권력을 위해서 희생양으로 죽여 버린 무미(무측천) 또한 당고종 이치는 아버지 당태종의 여인이었던 무미에게 빠져서 권력을 모두 그녀에게 내주었고, 무미는 결국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무미는 권력의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이 낳은 딸도 아들도 서슴없이 희생양으로 죽인다. 당현종은 자신의 며느리로 들어온 양옥환(양귀비)에게 사랑의 눈이 멀어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 이 책 『황궁의 성』안에는 이와 같은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봉건 시대 속에서 최고의 권력기관이었던 황실에서 사랑과 권력에 앞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본질과 속성을 너무나도 생생하고 흥미롭게 보여준다. 절대적 권위의 시대 최고의 권력기관 황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정사보다 생생하고 적나라한 밤의 중국사에 나타한 인간의 본질! 이 책의 차례나 내용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온갖 기행과 타락, 암투와 배신으로 얼룩진 중국황실의 역사를 발견하고 한편으로는 놀라움과 또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동시에 느낄지 모른다. 궁녀 혹은 자신을 길러준 유모와 성관계를 맺은 황태자, 여동생을 탐한 황제, 한꺼번에 16명의 비빈과 함께 순장된 황제, 아버지의 여자를 취한 황제, 여든을 넘어서까지 남색을 즐긴 여황제……. 황태자들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체위가 나타난 춘화나 조각상을 통해 황궁의 은밀한 장소에서 ‘개인교습’을 받았다. 또 유난히도 중국황실에는 성교를 통해 쾌락을 극대화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소설처럼 풀어놓는 방중서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이처럼 낯 뜨거운 쾌락의 역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중국은 하왕조 이후 천 년 가까이 정치적으로는 군주제를 바탕으로 유가사상이 보편화된 사회였다. 유가사상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즉 자신의 인격수양과 가족의 안위와 평안을 근간으로 삼는다. 가족을 떠받드는 요체는 효孝인데, 효의 시작은 바로 대 잇기를 통한 자손번창이다. 더욱이 국가권력의 최고정점인 황실의 경우는 오죽했겠는가 종족 번영과 안녕을 위해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처럼 불거진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낱낱이 밝힌 중국황실의 치명적이면서도 잔혹한 쾌락 혹은 암투의 역사이다. 쾌락에 대한 집착은 결국 권력의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는 역사적 진실 역시 쉽게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은밀한 쾌락의 역사는 곧 거대한 변혁의 회오리를 몰고 오게 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관통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대제국 중국황실의 중심에서 쾌락에 빠진 황제 혹은 황후들은 대부분 내쫓김이나 죽임을 당하곤 한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 아들, 혹은 숙부라는 존재는 가장 경계해야 할 잠재적 적이며 질투와 배신이란 황실에서 일상다반사가 된다. 또 황제와 잠자리를 하기 위해 노심초사 밤을 기다리는 비빈들,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벌어지는 후궁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 아들을 낳으면 죽임을 당하는 황후의 아이러니한 운명,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은 과욕이 낳은 근친혼……. 황후는 수없이 간택되고 폐위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중국역사상 황후의 수는 황제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물론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무색하게 몇 십 년 동안 권력을 장악한 여황후도 있긴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간계함과 퇴폐적 생활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황실의 은밀한 성 이야기는 권력의 속성은 물론이거니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인간의 내면적 본성이나 본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황실의 성性 담론을 다룬 이 책의 저자 시앙쓰는 베이징 고궁박물관 연구원 겸 도서관 부관장이며 중국 최고의 황실 역사 전문가이다. 그는 황실관련 기록속 편린으로 남아있는 성관련 사료들을 토대로 무한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황실의 성을 자유로운 필치로 그려낸다. 독자들은 황실의 은밀한 스캔들 뒤에 감춰진 인간 본연의 욕망, 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현재적 관점에서 곱씹을 때 행간에 숨은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한 차원 높일 것이다. |